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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의 노점상들》 7화/8화

philippines7641 2025. 4. 15.

 

《마닐라의 노점상들》

제7화. 아이스캔디 파는 아이들
Tondo, Manila  오후 시간, 학교 끝난 뒤 

학교 종이 울리고, 철제 대문이 열리자 아이들이 작은 파도처럼 거리로 흘러나왔다.
책가방을 멘 채, 혹은 던져놓고 곧장 “일터”로 향하는 아이들.
오늘의 주인공은 셋.
마르코, 엘리사, 그리고 작은 막내 토토이.

이 아이들의 직업은 ‘아이스캔디 파는 사람’.
작은 스티로폼 박스 안에 얼려진 달콤한 과일맛 아이스캔디가 수십 개.
박스는 크지만 몸은 작아서, 어깨에 멜 수 없어 앞에 들고 다닌다.
그 무게는… 학교에서 배운 산수로 계산할 수는 없는 어떤 삶의 무게다.

Tondo의 오후, 해가 내려앉기 시작할 즈음,
이 아이들의 목소리는 골목 안에서 골목 밖으로 퍼진다.
Aysken-deee! Bili na po!
그들의 목소리는 상품의 광고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외치는 일종의 선언처럼 들렸다.
“나 여기 있어요, 아직 순수해요.”

엘리사는 학교에서는 조용한 편이지만
아이스캔디를 팔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된다.
크게 외치고, 미소도 크다.
그녀의 눈에는,
단돈 5페소를 주고 아이스캔디를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어른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오늘의 삶을 그녀와 나누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르코는 계산이 빠르다.
5페소짜리 8개 팔면 40페소.
엄마는 그 중 30페소만 가져가시고, 10페소는 마르코의 ‘자유 돈’.
그 돈으로 슬리퍼를 사고, 연필을 사고, 때론 간식도 산다.
하지만 마르코의 꿈은 장래에 아이스캔디 공장을 직접 세우는 것.
자기가 만든 맛으로 도시를 뒤덮고 싶단다.
망고, 초코, 루코즈(lychee), 그리고 아직 세상에 없는 무슨 신맛의 조합.

막내 토토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웃는다. 항상.
작은 손으로 아이스캔디 하나를 건넬 때, 그 손에 있는 힘보다
그 눈빛에 있는 빛이 더 선명하다.
토토이는 아이스캔디를 팔지만,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받고 다닌다.
언젠가 누가 말했었다.
“그 아이는 아이스캔디보다 더 시원하고, 더 달콤해.”

그날 오후,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마르코가 아이스캔디 박스를 번개처럼 안고 천막 밑으로 달렸고
엘리사는 미끄러져 무릎이 까졌고
토토이는 울지 않았다.
셋은 그렇게 비 맞은 아이스캔디 박스를 두고, 조용히 앉아 비를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이스캔디 하나씩을 꺼내 서로 나눠 먹었다.
자기들이 파는 물건을, 자기도 사는 것이다.
그건 하루 중 가장 순수한 순간이었다.

Tondo의 골목 안,
이 작은 영웅들은 오늘도 학교를 마치고 일터로 간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무얼 팔고 있나요?”
“당신은 오늘, 무엇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나요?”


 

《마닐라의 노점상들》

제8화. 정리편: 거리 위의 철학
인물들의 그 이후 

새벽 6시, 키아포 시장.
조슬린은 오늘도 루가우 솥을 걸었다.
하지만 요즘은 혼자 아니다.
과거 외상 단골이던 이웃들이, 은근슬쩍 손을 보탠다.
한 명은 식탁을 닦고, 한 명은 그릇을 내오고.
그녀는 여전히 말이 적지만,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에게 기대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오전 11시, 삼팔로크 초등학교 앞.
제롬은 여전히 바나나큐를 팔고 있다.
하지만 이젠 가끔 그가 만든 간식에 작은 노트가 함께 들어간다.
"당신도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어요."
그는 팔기 위해 바나나큐를 만든다기보단,
누군가의 하루를 “기억나게” 하기 위해 만든다.

점심 무렵, 라살 거리.
멜라니는 여전히 튀김을 굽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한켠에서 음료를 판다.
두 사람은 ‘부부 팀워크의 상징’이 되었다.
며칠 전에는 근처에서 노점 창업을 시작한 젊은 부부에게
자신의 소스 비법 일부를 전수해줬다.
“너희도 우리가 된다고 믿어.”

오전 6시, 에르미타 거리 골목.
타호를 파는 테스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돈다.
그녀는 손님들의 이름을 거의 외우고 있다.
‘계속 오는 사람’은 누구나 특별하다.
그녀의 꾸준함은 사람들이 잊고 있던 관계의 온기를 되살린다.

저녁 6시, 렉토 거리 어귀.
BBQ를 굽는 아르넬의 불꽃은 여전히 거세다.
불은 여전히 덥고, 연기는 눈이 맵지만
그의 기술과 감각은 이제 도시 전설이 되었다.
최근, 그는 거리 아이 하나에게 바비큐 굽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언젠간 이 불, 너한테 넘길지도 몰라.”

저녁 7시, 파사이의 트라이시클 거리.
페르난도의 마미 가게는 여전히 열린다.
하지만 가게 옆에 작은 벤치가 생겼다.
일 끝낸 사람들이 앉아 국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 벤치는 끈기의 상징이자
이 도시가 하루를 ‘잘 살았다’고 말해주는 자리다.

그리고, 톤도 골목 어귀.
학교 끝난 후, 여전히 아이스캔디를 파는 아이들이 있다.
마르코는 장래희망이 ‘공장 사장’에서 ‘아이스캔디 선생님’으로 바뀌었고,
엘리사는 이제 친구들 몇 명을 더 데려와 함께 판다.
토토이는... 아직도 웃는다.
이 골목엔, 아직 순수함이 산다.


이야기를 정리하며
마닐라의 거리에는 무수한 발자국이 있다.
그 발자국들은 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서로를 위해 불을 피우고, 국을 끓이고, 소스를 만들며
우리는 이 도시 위에 ‘연대’라는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안다.
노점이란 단순한 생계의 공간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철학의 장이라는 걸.
그 속엔 위로가 있고, 희망이 있고, 사랑이 있고,
꾸준함과 생존과 끈기, 그리고 순수함이 있다.

그 철학은 오늘도 거리 위에서 이어진다.
그리고 당신이 멈춰 선 그 순간,
그 이야기의 다음 화는 당신일지도 모른다.


《마닐라의 노점상들》을 마치며, 이 작은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마닐라의 거리에서 작은 가게를 열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노점상들. 그들은 단순히 음식을 팔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 속에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소중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손길과 미소는 마치 한 조각의 행복을 나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여러분에게 그들의 일상 속에서 만나는 진짜 이야기들이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Joselyn과 Jerome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저 길을 걷다가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가진 소박한 꿈과 희망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닌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글을 통해 그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작은 순간에 담긴 따뜻함을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단순한 것들이, 때로는 무심코 지나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도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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