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16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31화/32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31화 – 산티아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다가 부르는 베일러(Baler)로2025년 8월 4일, 저녁 – 산티아고 작별부랴부랴 짐을 싸고 몬테산티아고(산티아고 시티)를 떠나려 했다.숙소 주인과의 작별은 번개처럼 짧았다.달려간 터미널은 ‘산티아고 중앙버스터미널’이었지만,밤과는 인연이 없었다.“더는 출발 좌석이 없어요.”정보를 잘못 알고 무작정 나온 게 화근이었다.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묵는다.근처 Costa Pacifica 호텔 대신 조금 비싼 Hotel Rupert A Baler를 잡았다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픈 마음이었다.근처 식당 Kusina Luntian에 들어갔다.필리핀의 전통 ‘파코 샐러드(Pako salad)’와 구운 삼겹살(liempo)을 주문했다 .맥주로는 현지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6. 20.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9화/30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29화 - 투게가라오(Tuguegarao)를 떠나 산티아고(Santiago)로 가는 긴 여정길2024년 7월 29일, 아침눈을 떴을 때, 시계는 이미 아침 8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앗, 망했다.’내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건, 투게가라오라는 도시가 주는 묘한 평온 때문이었을까.햇살은 이미 창문을 넘고 있었고, 머물던 숙소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멀어지고 있었다.서둘러 배낭을 메고 문을 나섰다.고작 이틀을 머물렀을 뿐인데, 이상하게 정든 공간."다음에 또 와요!"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짧고 밝았지만, 마음 어딘가를 묘하게 찔렀다.아쉽게 손을 흔들며,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마치 영화처럼.버스는 바로 눈앞에서 출발해버렸다.기억보다 빠른 출발, 혹은 나의..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6. 14.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7화/28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27화 – 발레스테로스를 떠나, 투게가라오(Tuguegarao)로 가는 긴 여정길2025년 7월 21일필리핀 북부의 조용한 마을, 발레스테로스(Valleysteros).이른 아침, 창밖으로 새들의 짧은 울음소리가 들리며 내가 머물던 작은 숙소 Balai Carmela Homestay의 창문이 붉게 물들었다.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고, 곧장 떠나야 할 시간임을 직감했다. 아침 인사도 변변히 나누지 못하고, 주인 아주머니와는 엇갈린 손인사로 작별을 대신했다. “Take care, sir. Come back someday…”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다.짐을 챙겨 Ballesteros Bus Terminal로 달려갔지만, 이미 내가 타려던 버스는 출발해 버린 뒤였다. 그 순간,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6. 7.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5화/26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25화 - 클라베리아에서 발레스테로스로 가는 길2025년 7월 16일, 오후. 작별의 바람과 버스 창밖 풍경점심은 클라베리아의 Guzmana Avenue 끝자락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Rosita’s Eatery’.메뉴는 단순했다. 판싯 칸톤 하나, 그리고 망고 쉐이크.누구나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그런 조합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이 여행의 마지막 ‘클라베리아의 음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입안에 남은 달콤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혼자 앉은 테이블에 바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여기까지 왔네.”창밖으로는 조용한 도로와 희미하게 웃고 있는 하늘.창문 넘어 바닷바람이 천천히 부딪혀 오고, 낯익은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식당 아주머니는 내가..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5. 23.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3화/24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23화 - 라오그(Laoag)에서 클라베리아(Claveria, Cagayan) 가는 길7월 9일 아침.라오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며칠 동안 머물렀던 Partas Bus Terminal 근처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며, 이 도시에서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숙소 주인이 건네준 따뜻한 판 데 살(Pan de Sal) 한 조각과 진한 바랑가이 커피 한 잔으로 간단한 아침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GV Florida Transport 터미널로 향한다.그러나 여행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법.클라베리아(Claveria, Cagayan)로 가는 직행 버스는 이미 출발했거나, 당분간 운행 예정이 없다는 소식이다.터미널 직원의 설명은 불친절하고, 영어도 통하지 않아 답답함이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5. 16.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1화/22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21화 - 비간에서 라오그(Laoag) 가는 길📆 7월 2일비간을 떠나는 아침, 여전히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대충 배낭을 메고 거리로 나섰고, 푹푹 찌는 아침 공기를 지나 터미널로 향했다.줄을 잘못 섰던 탓일까? 그녀와 마주쳤고, 우리는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탔다.버스비를 내주며 그녀는 웃었다."오늘은 내가 쏠게요. 대신 저녁밥은 당신 차례."길고 낡은 버스는 덜컹이며 북쪽으로 달렸다.창밖은 필리핀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 논과 물소, 헛간 같은 집들, 그리고 군데군데 서 있는 산티아고 조각상.버스 안에서 우리는 계속 수다를 떨었다."전 원래 회사원이었어요. 일본계 기업. 하루 종일 엑셀 시트랑 싸우는 인생.""그럼 왜 떠났어요?""엑셀이 내 인생을 지배할까 봐요."그녀는 정색했..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5. 10.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19화/20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19화: "6월 25일, 산타 마리아에서 비간으로 가는 길"6월 25일, 산타 마리아를 떠났다. 아침의 상쾌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차가운 아침 공기보다는 뜨거운 햇살을 더 기대한 내가 너무 한심해졌다. 태양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니, "오늘은 적어도 7시간을 걷겠구나..." 라는 깨달음이 스쳤다.**"비간, 이리 와!"**라고 외치며, 나는 걷기 시작했다.그 길은 어느새 작은 마을과 논밭을 지나, 산과 들을 넘어, 자잘한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드디어 내가 만날 그곳은 바로 비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칼레사의 말 소리, 그 소리가 내가 꿈꾸던 시간이었다.그럼 이제, 내가 만난 '중간'을 소개할 차례.1. 시작은 소박하지만 길은 멀다산타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5. 3.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17화/18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17화6월 20일, 뱅드에서 산타 마리아로아침, 뱅드.한껏 눅진한 이른 햇살이 산등성이를 감쌌다.나는 배낭을 메고 숙소 주인 아주머니께 깊게 허리를 숙였다."살아있으면 또 오겠습니다!"아주머니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뒤돌아 터미널로 향했다.길가에 늘어선 나무들, 은은한 국수 냄새가 풍기던 작은 포장마차, 그리고 이상하게 정든 골목들.내 발걸음은 터미널로 가는데, 마음 한쪽은 뱅드에 꽂혀 있었다.(아, 인간 마음은 이렇게 양다리를 걸친다니까.)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가 이미 대기 중.기사 아저씨는 손짓으로 "얼른 타라"고 하고 있었다.차에 올라타면서 마지막으로 뱅드를 돌아봤다."짧았다, 뜨거웠다, 안녕이다."버스가 덜컹거리며 출발했다.산을 타고 오르고, 계곡을 돌고, 온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4. 29.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15화/16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15화: 본톡 지나 험난한 뱅드(Bangued)로 가는 마지막 이야기 그리고 도착하는 풍경 마음......뱅드로 향하는 길은 마치 시간이 꺾여 내려가는 골짜기 같았다. 본톡의 마지막 이슬을 털어내며 버스를 탔을 때, 나는 그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질문을 가슴속에 넣고 있었다. 도로는 험했고, 산의 그림자는 점점 낮게 깔렸다.시간이 아닌 거리의 피로가 쌓일수록 마음은 점점 더 가벼워졌고,모든 기대가 사라졌을 때, 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그 순간, 뱅드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마치 오랜 이야기 끝에 겨우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처럼,그 풍경은 말을 걸어왔다.“이제, 숨 좀 쉬어도 돼요.”이제는 바람과 햇살을 기록해본다. 뱅드에 도착한 그날의 오후를,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4. 23.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13화/14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13화: 바타드로 가는 길 — 피터는 왜 자꾸 돌아보는가바나웨의 아침은 유난히 조용했다.닭이 우는 소리, 멀리서 물 긷는 소리, 그리고…“형, 나 허벅지 안 움직여져.”피터의 목소리.전날 계단논을 오르내린 피터의 다리는 이미 배신을 시작한 듯했다.“너무 예뻐서 내려갔는데, 너무 예뻐서 못 올라오겠더라구요.”“근육통이 감동을 이기지 못한 거지.”우린 서로를 놀리면서도, 다음 마을 바타드로 향할 채비를 했다.바타드는 자동차로 갈 수 없다.그래서 우린 진짜 ‘걷는 시간’에 진입하게 되었다.트라이시클을 타고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까지 이동한 후, 본격적인 산길을 걸어야 했다.“형, 이건 거의 영화 ‘반지의 제왕’ 아니야?산 넘고, 돌길 걷고, 여기서 갑자기 골룸 나와도 난 믿을 것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4. 20.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11화/12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11화: 사가다의 골목에서, 피터와 내 여행은 시작되었다6월 4일 — 동굴, 박쥐, 그리고 말 많은 독일인오늘의 첫 일정은 사가다의 명물 서머쏘그 동굴(Sumaguing Cave).가이드와 함께 내려가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Excuse me! You guys also going down? This is my fourth time! I’m kind of a cave expert.”— 독일인이다. 이름은 ‘안나’.피터가 소곤댔다. “그럼 우리도 네 번째인 척하자.”— 그래서 우리는 안나 앞에서 계속 “여기 미끄럽지? 지난번에도 여기서…” 이런 식으로 말하며 내려갔다.진짜 미끄러웠고, 피터는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진정한 동굴 체험은 발바닥으로 느끼는 거야.”—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4. 19.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9화/10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9화: 바기오, 안개 속의 도시에서 나를 걷다5월 27일 — 바기오의 첫 아침창밖은 안개가 내려앉은 듯 뿌옇고, 지프니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옷을 입고, 신발 끈을 조였다. 오늘은 도시를 걷는 날. 아니, 도시가 나를 걷게 할 날이다.호텔을 나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번햄 파크(Burnham Park). 이른 아침의 공원은 조용했고, 호수 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노란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안개를 뚫고 들려왔다. 그 소리는 한 편의 기도처럼 들렸다.공원을 지나 세션 로드(Session Road)를 따라 걷다 보니, 거리의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빵집에서 갓 구운 판데살 냄새가 풍겨왔고, 커피 향이 그 뒤를 따랐다. 나는 작은 카페에..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4. 18.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7화/8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7화. 다구판에서의 5일, 물 위를 걷는 법5월 22일, 이른 아침.창밖은 안개가 내려앉은 듯 뿌옇고, 지프니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나는 조용히 옷을 입고, 신발 끈을 조였다. 오늘은 도시를 걷는 날.아니, 도시가 나를 걷게 할 날이다.호텔 몬데에서 나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웰강(Dawel River).이 도시가 '물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를 직접 보고 싶었다.강변에는 대나무로 만든 배가 여러 척 정박해 있었고,천천히 나아가는 배 위에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가끔은 지역 고등학생들이 민요를 부르며 배 안내를 돕기도 했다.그 목소리는 한 편의 기도처럼 들렸다.강 끝에서 내리자, 현지인이 **방우스 양식장(Bangus Farm)**을 알려줬다.“이쪽이에요. 이 물고기들이 우..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4. 17.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5화/6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5화. 딸락, 작지만 정직한 도시에서— 5월 18일~20일, 무계획의 여정 속, 잠시 멈춘 하루들 —첫째 날 – 천천히, 딸락 속으로 들어가기아침은 고등어 굽는 냄새였다.무에르토 하우스의 작은 주방에서 풍겨오는 향,그리고 주인이 건넨 달걀 프라이와 마늘밥.딸락에서의 첫 아침은 그렇게 진심이었다.시내는 작았다. 하지만 걷는 데엔 딱 좋았다.딸락 대성당(Tarlac Cathedral)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성당은 오래된 돌담과 고요한 시간의 냄새로 가득했다.햇살 아래에서 기도하는 노인의 모습이, 이상하게 따뜻했다.시장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목,삶은 땅콩, 튀긴 시그시그, 바나나큐를 파는 노점상들 사이로 걸었다.“Tikman mo ito. 맛 좀 봐요.”처음보는 얼굴에도 선뜻 권해주는 ..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4. 16. 필리핀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3화/4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3화. 앙헬레스, 붉은 거리에서 떠날 준비까지앙헬레스에서 맞는 첫 아침은 생각보다 조용했다.트라이시클 소리도, 거리의 분주함도내 안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들렸다.아마도 여행 초입의 그 설렘 때문이었을까.나는 슬리퍼를 끌고 앙헬레스 공공시장으로 향했다.그곳은 살아 있었다.칼라만시 향이 코끝을 찌르고,물고기 비늘이 해를 반사하는 그 복잡한 골목 사이에서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망고 세 개를 50페소에 팔았다.“달아. 진짜야.”그 말이 왠지 믿음직스러워서 바로 샀다.그리고 그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여행스러운 망고 맛이었다.점심엔 길거리 시시그를 찾아 나섰다.시장 옆 작은 포장마차, 철판 위에서 자글자글 소리 내는 고기.칼라만시를 톡 뿌리고, 고추 하나 툭 썰어 넣으니뜨거운 김과 함께.. 연재(Series)/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025. 4. 1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