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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5화/26화

philippines7641 2025. 5. 23.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25화 - 클라베리아에서 발레스테로스로 가는 길
2025년 7월 16일, 오후. 작별의 바람과 버스 창밖 풍경


점심은 클라베리아의 Guzmana Avenue 끝자락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Rosita’s Eatery’.
메뉴는 단순했다. 판싯 칸톤 하나, 그리고 망고 쉐이크.
누구나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그런 조합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여행의 마지막 ‘클라베리아의 음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입안에 남은 달콤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앉은 테이블에 바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까지 왔네.”
창밖으로는 조용한 도로와 희미하게 웃고 있는 하늘.
창문 넘어 바닷바람이 천천히 부딪혀 오고, 낯익은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식당 아주머니는 내가 떠날 거란 걸 짐작한 듯, 계산을 마친 내게 말했다.
“트라이시클 부를까요? 터미널까지 걸으면 더워요.”
나는 고개를 저었고, 아주머니는 웃으며 망고 하나를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서비스. 발레스테로스 가는 길에 까먹어요.”


Guzmana Avenue를 따라 시내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파란 트라이시클 몇 대가 지나가고, 거리엔 나른한 오후의 기운이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졸린 얼굴로 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어느 집 앞에선 라디오에서 90년대 OPM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클라베리아 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오후 2시 20분쯤이었다.
간이 의자 몇 개, 시멘트 바닥, 그리고 발레스테로스 방면으로 가는 낡은 버스 한 대.
버스 앞유리엔 손글씨로 써 놓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Ballesteros - Abulug - Pamplona”

버스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나는 맨 뒷자리 근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엔 중년의 농부처럼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큰 포대 자루를 다리에 얹고 앉아 있었고, 내가 “마욘 하폰(po)” 인사하자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어디까지 가요?”
“발레스테로스요.”
“혼자?”
“네. 걷고, 보고, 쓰려고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요즘 그런 사람은 별로 없는데… 조심하세요. 길은 때때로 조용해서 외로워요.” 하고 말했다.

버스는 드디어 움직였고, 시내를 빠져나가자 바다가 옆에 붙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바람, 바다, 그리고 점점 작아지는 클라베리아.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지금이 ‘지금’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오후 3시 30분.
운전기사는 갑자기 버스를 세웠다.
“발레스테로스 다리 전에 내릴 사람, 지금 내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메고, 천천히 버스 계단을 내려섰다.

주변은 한적했다.
이곳은 발레스테로스 시내 전, 마산(Masan)과 티부(Tibu) 중간 어디쯤.
도로 옆에는 얕은 강이 흐르고, 바다 내음이 은근히 섞인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 어깨에 가방을 고쳐 메고, 남은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다.


길 위는 조용했다.
모래 섞인 시골길엔 노란 들국화가 군데군데 피어 있었고, 해가 기울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걷다 보니 티부(Tibu) 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됐다.
수업이 막 끝났는지, 아이들이 교복을 입은 채 땅에 선을 그어놓고 ‘시파’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을 지날 때 잠시 멈춰 섰다.
공이 바깥으로 튀어나오자, 한 아이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Kuya! kick it back!”
나는 신발 끝으로 공을 살짝 차주었고, 아이들은 ‘와아~!’ 하며 웃었다.
내게 손을 흔들며 “Bye!”를 외치는 그들의 얼굴은 바다보다 더 밝았다.


오후 5시 30분, 발레스테로스 시내 진입
거리는 느긋했다.
고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트라이시클을 기다리고 있었고, 길가 포장마차에선 노란 바나나 튀김 냄새가 풍겨 나왔다.
나는 그 중 한 곳에 멈춰 따끈한 판시트를 시켰다.
노점 아주머니는 말없이 조그만 그릇에 면을 담아 주며 “고추 넣을래요?”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달달하고 매운 냄새가 퍼져 나왔다.

바닷가 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해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고, 붉은 노을이 바다와 산의 경계선을 태우고 있었다.
나는 모래사장에 앉아 마지막 망고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그 맛은 멀고도 가까운, 바람과 바다와 사람의 기억이 녹아든 맛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발레스테로스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노트를 펼쳤다.
오늘 하루, 먹은 것, 걸은 길, 만난 얼굴들, 웃음과 노을.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같았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에 한 문장을 적었다.

“길 위에서, 나는 점점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26화 - 발레스테로스, 지친 나를 더 내려놓게 하다
2025년 7월 17일 ~ 7월 20일, 나를 위한 도시에서의 4박 5일


버스를 내린 건 마산과 푸레 바랑가이 사이, 들판 한가운데였다.
도로는 조용했고, 바람엔 익은 쌀겨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넸던 농부는 짐을 내려놓고 논으로 들어섰고, 나는 혼자 남은 길가에 앉아 바나나잎에 싸온 판시트를 꺼내 먹었다.
그 순간부터, 발레스테로스는 나의 도시가 되었다.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갔고, 조용한 방 하나를 골라 묵었다.
다행히 창문은 바다 쪽을 향하고 있었고, 밤이 오기 전까지 파도 소리가 벽에 스며들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침대 위에 누웠다.
오랜만에 다리의 무게를 내려놓은 그 순간, 마음까지 눕는 기분이었다.


첫째 날 - 발레스테로스의 바닷가에서 아침을 걷다

7월 17일 아침, 이른 해가 물 위로 퍼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푸레 바랑가이의 바닷가로 나섰다.
모래는 아직 차가웠고, 어민들이 그물을 걷고 있었다.
한 남자가 “도와줄래요?” 하고 웃으며 물었고, 나는 그의 말에 따라 그물 끝을 잡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물 속에는 망둥이 몇 마리와 함께 낡은 샌들이 하나 걸려 나왔다.

그는 샌들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건 발레스테로스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네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 샌들은 이후 내가 머문 방의 문 옆에 놓였다.

그날 오전엔 발레스테로스 공공도서관에 들렀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천장이 높아 덥지 않았고, 창문 너머로 바닷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어린이책 코너에서 <Ang Mabait na Kalabaw(착한 물소)>라는 동화를 꺼내 읽었고, 옆자리 초등학생이 나를 힐끔거리다 다가와 말했다.
“Kuya, 그거 슬퍼요.”
우리는 함께 그 책을 끝까지 읽었다.
책장이 닫히고 나서,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Arnel. Grade 4.”
그의 웃음 속엔 세상이 아직 덜 무거운 기운이 있었다.


둘째 날 - 시장, 온천, 그리고 ‘귀신 이야기’

7월 18일은 아침부터 활기찼다.
발레스테로스 시공설 시장은 살아있는 듯 분주했고, 나는 생강이 든 아로요 국과 찹쌀떡을 아침으로 먹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내가 혼자 여행 중이라는 말에 두 손을 모아 감탄했다.
“혼자 걷는 사람은, 천사든지… 아주 큰 죄를 씻는 중이든지.”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아마 후자일 거예요.” 내가 대답했다.

오후엔 힐롱 힐롱(Hilong Hilong) 온천에 갔다.
도시 외곽,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곳은 마치 누군가의 기억 안에만 존재하는 듯했다.
조용한 물 웅덩이엔 몇 명의 노인들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중 한 할아버지는 내게 말을 걸더니, 물가 바위에 앉아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이 온천 위로 유령이 떠다녔다오. 죽은 해녀가 찾는 물고기가 아직도 못 잡혔다고.”
그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조용한 농담이 이 마을 사람들의 고유한 유머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물속에서 발끝에 전해지는 온기는, 그 이야기보다 더 오래 남았다.


셋째 날 - 묘지에서 만난 이름 없는 시간

7월 19일,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시내 뒤편의 공공묘지로 향했다.
그곳엔 가족의 무덤이 함께 쌓여 있었고, 플라스틱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한 무덤 앞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한 할머니가 와서 내 옆에 조용히 앉더니 작은 종이백을 내밀었다.

“이건 우리 아들 거였어요. 오늘 생일이거든요.”
나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녀의 아들은 생전에 트라이시클 기사였고, 지금도 누군가는 그의 자리에 앉아 같은 길을 달리고 있을 거라고.

나는 조용히 종이백을 받아 묘 앞에 놓아주었다.
안엔 작은 빵 하나와 마미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누구든, 당신처럼 와줘서 고마워요.”

그날 저녁, 나는 길가에서 구운 생선과 함께 현지 맥주를 마셨다.
배가 부르지도, 허전하지도 않았다.
그건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증거였다.


넷째 날 - 마지막 저녁, 바람 위에 앉다

7월 20일, 발레스테로스에서의 마지막 하루.
나는 바탐바토(Batambato) 언덕 마을을 찾았다.
해가 저물 무렵, 언덕 가장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앉았다.
여기선 신호도 약하고, 시계도 의미 없었다.

한 소녀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Kuya, 그림 그려줘요.”
나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노트 한 장에 바다와 언덕을 그려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내게 작게 속삭였다.
“여기 또 와요. 우리 마을, 잊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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