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간에서 병원 가봤습니다ㅋㅋㅋ 》
비간은 내게 오랫동안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마닐라의 혼잡함도, 바기오의 선선한 정취도 좋지만,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이 도시엔 묘한 향수가 있었다.
비간에 도착한 아침, 나는 너무도 설레서 짐을 풀기도 전에 거리로 나섰다.
돌바닥 위로 덜컥덜컥 마차가 지나가고, 붉은 벽돌 건물들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 나를 반겼다.
숨을 깊이 들이켰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어떤 시대로의 전입이었다.
길거리 엠파나다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바삭하게 튀긴 껍질 속에 파파야와 계란, 그리고 정체불명의 고기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이게 그렇게 맛있다던 바로 그 비간 엠파나다인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칼라만시 주스까지 곁들여 한 입…
“크… 이 맛에 여행하지.”
그 순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몇 시간 뒤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오후 세 시쯤이었나.
갑자기 세상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머리는 띵하고, 땀은 식으며, 몸이 축 늘어졌다.
관광객들 틈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자, 근처 상인이 다가와 말했다.
“Sir, are you okay?”
순간, 그의 목소리도 메아리처럼 들렸다.
아, 뭔가 심상치 않구나.
친구가 급히 근처 병원을 검색해줬다.
이름은 ‘Vigan Cooperative Hospital’.
기억난다. 간판은 조용히 바래 있었고, 병원 문은 약간 뻑뻑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뜻밖에도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간호사들이 빠르게 체온을 재고, 혈압을 확인해주었다.
문진은 짧았지만 정확했다.
“Maybe food poisoning. Let’s give you fluids first.”
나는 조용히 링거를 맞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필리핀 비간에서 생애 첫 링거.
천장에 달린 선풍기는 삐걱거리며 돌아갔고,
옆 침대 할머니는 나를 보고 살짝 웃었다.
간호사 제니는 링거를 꽂으며 나직이 말했다.
“Don’t worry, sir. You will feel better soon.”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몸은 많이 가벼워졌다.
의사는 큰 병은 아니라며 약 몇 알과 주의사항을 적어주었다.
병원을 나서며 혼자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와서 병원 체험이라니… 여행의 뜻밖의 확장이다.”
근처 노점에서 아로즈 칼도(Arroz Caldo)를 시켜 먹었다.
따끈한 닭죽이 지친 위장을 감싸 안았다.
국물 한 숟갈 넘기며, 나는 피식 웃었다.
어제는 엠파나다, 오늘은 링거, 그리고 지금은 죽.
이런 게 바로 여행이지.
진료비는 약 300페소. 링거는 450페소. 약값까지 합쳐도 만 원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저렴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태도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비록 의학적 첨단 장비는 없었지만, 마음만은 분명 따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병원 체험이 없었다면 비간 여행은 반쪽짜리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관광지에서 만난 거리의 풍경도 좋았지만,
그곳에서 링거 맞으며 바라본 천장과, 미소 짓던 간호사의 얼굴이 더 오래 남는다.
혹시 다음에 다시 비간에 가게 된다면,
엠파나다는 한 번쯤 더 생각하고 먹을 테지만,
그 병원은… 왠지 한 번쯤 들러 인사하고 싶다.
“안녕, 제니. 나 이제 정말 괜찮아.”
아주 오래전 이야기
되셨다면
공감 꾹 ~ !
부탁드려요 💖
'메모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리핀 노점 음식 베스트 10 (2) | 2025.05.29 |
---|---|
필리핀의 오후 3시, 모두가 멈춘다 (3) | 2025.05.29 |
필리핀에서 도난 신고는 어디서 해? (0) | 2025.05.27 |
필리핀에서 오토바이와 한국인 대상 범죄 (4) | 2025.05.26 |
필리핀 대통령궁 옆 맥주공장 (3) | 2025.05.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