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필리핀에서 경찰을 부르면 벌어지는 일

philippines7641 2025. 5. 21.

필리핀에서 경찰을 부르면 벌어지는 일

믿음인가, 모험인가, 혹은 그냥 시간 낭비인가


한국에선 누가 내 지갑을 훔치면 112부터 누른다.
하지만 마닐라에서 폰을 잃어버린 그날, 난 손에 폰이 없다는 사실보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지?”라는 공허한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도난의 시작 — 3초, 그게 전부였다

오전 10시, 마닐라 퀴아포(Quiapo) 근처 거리.
시장 골목 안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길목.
뜨거운 햇살,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파, 튀김 냄새, 트라이시클 경적 소리...

사진 한 장 찍고, 무심코 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는데,
3초 뒤에 손을 댔을 땐 없었다.

진짜, 말 그대로 “없었다.”

놀라서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너무 늦었고,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 표정을 보며 웃는 느낌도 있었다.

"Sir… gone. Already in Divisoria."
(디비소리아로 이미 넘어갔을걸요)

옆에 있던 과일 가게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그 말투가… 너무 담담했다. 마치 이런 일이 매일인 것처럼.


📍경찰서를 찾다 — 느린 발걸음, 느린 대화

근처에 경찰 초소가 있다는 말을 듣고 걸어갔다.
플라스틱 의자 3개, 나무 탁자 하나, 선풍기 하나 돌아가는 좁은 공간.
두 명의 경찰관이 앉아 있었는데,
한 명은 라면 먹고 있었고, 한 명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도난 신고하려고 왔습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그 순간, 경찰관은 슬쩍 나를 보더니,
라면 국물 후루룩 들이키고 말했다.

“어디서요? 몇 시쯤? 누구한테요?”

그 질문에 대답을 시작하자마자 옆에서 핸드폰 보던 경찰이 끼어들었다.

“Sir, do you have CCTV? No CCTV, no case.”
(CCTV 없으면 사건도 아닙니다)


📍신고 절차? 그런 건 책에만 있음

어떻게든 의지를 보이며 계속 설명하자
경찰은 마지못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사건 접수서 양식이었다.

형광펜으로 낙서하듯 뭔가 쓰기 시작했고,
내 말을 중간중간 끊으면서 묻는 말들은 대부분 이랬다.

  • "You have suspect?" (용의자 있어요?)
  • "What’s the IMEI number?" (기기 번호 아세요?)
  • "Insurance?" (보험 처리하실 거예요?)

결국 이름, 국적, 도난 장소, 시간만 적고 종이를 돌돌 말아
선풍기 밑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대사 한 줄.

“We will investigate.”
하지만 목소리에는 조사할 의지도, 기대도, 아무것도 없었다.


📍현지인의 팁 — 경찰을 움직이게 하는 법

나중에 현지인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자 그는 웃었다.

"You want result? You need connection."

“결과 원해요? 그럼 아는 사람 있어야 해요.”

그 친구는 어느 경찰서에서 아는 경찰관이 있다고 해서
다음 날 그를 따라가봤다.
그곳은 분위기가 달랐다.

앉자마자 냉수 한 잔, 의자 안내, 미소까지.
하지만 그건 내 친구 때문이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나 혼자였으면 그렇게 안 해줬을 거라는 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결론 — 경찰을 부른다는 건, 제도를 호출하는 게 아니다

필리핀에서는 경찰이 법의 상징이라기보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반응에 더 가까웠다.

제도가 약하고, 기록은 쌓여도 실천은 느리다.
실제로 어떤 외국인은 말한다.

"In the Philippines, prevention is better than justice."
(필리핀에선 정의보다 예방이 낫다.)


🧩 맺음말 — 정의는 느리고, 사람은 빠르다

경찰을 부른다고 해서 정의가 오는 게 아니다.
어쩌면 오는 건, 또 다른 체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니까.


정의는 없지만, 대화는 있다.
경찰도 사람이다. 하지만 너무 사람이다.


조금 더 보태어 씁니다....ㅋㅋㅋ


🕙 10시, 퀴아포 시장 — 시작은 슬리퍼 사러 간 길이었다

나는 그날 퀴아포(Quiapo) 시장에 슬리퍼 하나 사러 갔었다.
땀이 뻘뻘 나는데, 거리에선 balut 파는 아저씨 소리, 길바닥에 누운 개들,
그리고 양손에 가득 짐 들고 가는 마마이들.
그 중간쯤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바지 주머니에 폰 넣은 내 실수.
3초 뒤. 폰이 사라졌다.
정확히 기억난다.
바람이 한번 스쳤고, 내 옆에 바짝 붙었던 아이가 휙 달아났다.
그리고… 그 아이는 존재 자체가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누가 봤나요?” — 주변 반응은 너무 평온했다

놀라서 “My phone! My phone!” 하고 외쳤지만,
그 순간 주변 사람들은 다들 연기자처럼 자연스럽게 딴청을 피웠다.
닭꼬치 굽던 아저씨는 고개도 안 돌렸고,
앞에서 마닐라 타임즈 읽던 할아버지는 그냥 신문만 들었다.

한 아주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Too late na yan. Already sold that. Maybe ₱500.”
(이미 늦었어요. 아마 500페소 받고 팔았을 걸요)

그 말이 너무 일상적이라 충격이었다.
이건 범죄가 아니라 마치 아침 장사처럼 여겨지는 일이었다.


🚨 가까운 경찰서로 — 라면, 선풍기, 그리고 심드렁

근처 경찰 초소에 도착했을 땐,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라면 냄새,
그리고 마치 나를 귀찮은 과제처럼 보는 경찰 둘이 있었다.

“폰을 도둑맞았어요. 좀 도와주세요.”

경찰 1은 국물 후루룩.
경찰 2는 핸드폰 내려놓고 질문.

“IMEI number do you have?”
“May CCTV?”
“Suspect face? No? Okay.”
“Okay... fill this.”

서류 하나 던져주고, 나는 한참 이름 쓰고 국적 쓰고 있는데,
경찰은 벌써 다시 자기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진짜 그랬다. 내 사건은 A4 한 장으로 요약되었고, 그 이상은 없었다.


🛵 다른 사건들 — 현지인들도 기대 안 한다

며칠 뒤, 현지 친구 'Joel'에게 그 얘길 했더니
그는 대충 웃으며 한 마디 했다.

“Ako rin, 3번 도둑 맞았는데… 신고? Why? Waste of time.”
(나도 3번 털렸어. 신고? 왜 해? 시간 낭비지.)

그는 자기가 리잘 파크 근처에서 오토바이 헬멧을 도둑맞았다고 했다.
경찰에 가서 말했더니 대답은 이랬다.

“Do you have video? No? Then it’s gone.”

헬멧 값은 1,200페소였고, 결국 그는 새로 샀다.
신고하러 갔던 2시간 동안 땀만 더 흘렸다고 했다.


🛠️ 내가 본 '경찰 작동 시스템'

필리핀에서 경찰이 움직이려면 아래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1. 용의자를 현장에서 잡았다 — 예: 도둑을 직접 붙잡아 넘긴다
  2. 확실한 증거가 있다 — CCTV, 목격자, 영상
  3. “백”이 있다 — 예: 경찰관 친구나 친척
  4. 돈이 있다 — 예: 가벼운 뇌물, 혹은 ‘수고비’라는 명목

그 외에는 대부분

“We will investigate”
라는 한 마디 후, 아무것도 안 일어난다.


🚓 또 다른 이야기 — 트라이시클 사고와 경찰

2023년 여름, 다스마리냐스에서 한 번은
트라이시클이 뒤에서 택시를 박았다.

현장에 경찰이 와 있었는데,
트라이시클 운전자가 손바닥에 200페소 쥐고 슬쩍 경찰에게 건넸다.

경찰은 조용히 받아들고 말했다.

“Sir, minor lang yan. Go home na.”

택시 기사는 결국 혼자 수리비를 떠안았다.


✅ 정리하며 — 기대는 없고, 적응은 있다

필리핀에서 경찰이란,
*‘공권력’보단 ‘사람’*이다.
너무 사람이다.
실망도, 기대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웃으며 살아간다.


"Justice is optional. Survival is mandatory."
정의는 선택사항, 생존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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