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에서 한국인은 모르던 '바랑가이 캡틴'의 세계》
* 마을의 왕인가, 문제 해결사인가
- 필리핀 사회는 행정구역상 ‘바랑가이(Barangay)’라는 최하위 단위를 중심으로 운영됨
- 바랑가이 캡틴(Barangay Captain)은 해당 바랑가이의 최고 지도자
- 공공기관 직원이자 지역사회 대표로서, 민사 분쟁부터 쓰레기 수거, 범죄 신고, 지역 행정까지 도맡음
- 일상 속 민원, 갈등 조정, 긴급 상황 대응 등에서 주민들은 먼저 캡틴을 찾음
- 정부보다 더 ‘먼저’ 만나게 되는 공권력
- 선출직이며, 보통 3년 임기. 지역민의 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선거’는 동네 큰 행사임
“공무원이라기보다, 이 마을의 촌장이죠. 뭐든 물어보면 알아서 처리해줘요.” – 현지 주민 마르코(Marco)의 말
* 그들의 권력과 영향력
- 단순 행정책임자 수준이 아님. ‘리틀 정치인’이자 ‘실세’로 작용
- 경찰서나 시청보다도 바랑가이 홀(barangay hall)에 먼저 신고하는 문화
- 자치기금 및 정부지원금의 분배 결정, 마을 행사 주도, 비상사태 대응에서 주도권 행사
- 한국의 통장·이장 개념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력
- 부정선거, 권한 남용 등 부작용 사례도 존재. 특히 지방에서 그 영향력이 더 큼
- 일부 바랑가이 캡틴은 지역 ‘보스’로 군림하며, 정치권 진출의 디딤돌 역할도 함
“캡틴이 마음먹으면, 이 집도 저 집도 한순간에 조용해져요. 권위가 실립니다.” – 택시기사 알렉스(Alex)의 증언
🔍 캡틴을 중심으로 본 ‘필리핀 로컬 행정 구조’
- 바랑가이(Barangay): 필리핀의 가장 작은 행정구역
- 바랑가이 캡틴(Brgy. Captain): 바랑가이 최고 지도자
- 카구와드(Kagawad): 바랑가이 협의회 위원. 일반적으로 7명
- SK Chairman: 청년위원회 수장. 18세~24세 연령층의 리더 역할
- 바랑가이 탄오드(Barangay Tanod): 바랑가이 치안 자원봉사자. 사실상 마을 경찰
✍ 말.......
“우리는 그저 시장(Mayor)이나 경찰서장을 떠올리지만, 필리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권력’은 캡틴이다. 조용한 골목 어귀에서, 누구보다 주민의 삶을 아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 제1화: 타를락의 아침, 바랑가이 홀 앞에서
타를락 시 외곽, 이름 모를 바랑가이의 좁은 도로를 따라 걷는다. 바랑가이 홀 앞에는 작은 간이 천막과 낡은 의자 몇 개, 그리고 "Barangay Assembly This Friday!"라는 손글씨 포스터가 붙어 있다.
마닐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여기는 진짜 ‘마을’이고, ‘주민들’이 살아가는 현장이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경비 역할을 하는 **탄오드(Tanod)**에게 말을 건다.
"캡틴님 계세요?"
"Nandiyan siya, sir. Wait lang po."
바랑가이 캡틴을 만나기 전, 나는 무언가 중요한 문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통령도, 시장도 아닌 ‘캡틴’을 만나러 온 아침. 이 동네에서 그가 어떤 존재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 제2화: 바랑가이 캡틴을 만나다
"Hi, I’m Captain Joel. Welcome to our barangay."
작은 사무실, 낡은 선풍기, 벽에는 대통령 마르코스 Jr.의 사진이 걸려 있다.
캡틴 조엘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셔츠에 슬리퍼,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눈빛.
그는 바랑가이 캡틴으로 2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었다.
“내 일? 아침 7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누가 싸웠다, 쓰레기 수거가 안 됐다, 강아지가 도로에 나왔다… 뭐든 내 일이죠.”
“경찰보다 나를 먼저 찾는 게 이 동네 방식이에요.”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마을에서 발생한 갈등, 청년 취업 문제, 그리고 선거 때 돈을 주고받는 풍습까지. 그는 말한다.
“이 동네에서 권력이란 건, 주민들이 날 필요로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한국에선 이런 ‘로컬 보스’가 있었던가?
이 사람은 시장도 아닌데 마을의 ‘대통령’ 같았다.
문제 해결사이자 조정자, 리더이자 친구, 그리고 때론 경찰.
📘 제3화: 마을 주민의 목소리
바랑가이 홀 옆 작은 잡화점에서 과자를 사면서 60대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캡틴이요? 아이고, 우리 동네 엄마 아빠 다 캡틴이에요.”
“남편이랑 싸우면 먼저 캡틴에게 가서 말해요. 경찰은 너무 멀잖아요.”
학생들은 SK(청년위원회) 행사를 준비 중이었고, 탄오드들은 야간 순찰을 위한 무전을 맞추고 있었다. 이 마을은 ‘캡틴’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국처럼 행정복지센터 같은 게 없어요. 대신 캡틴이 있어요. 무언가 일이 생기면, 무조건 여기부터 와야 돼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바랑가이는 행정 구역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중심’**이었고,
캡틴은 그 중심의 리더이자 해결사였다.
📘 제4화: 다시 바라보는 한국의 마을 리더십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한국의 동장을 떠올렸다.
우리 동네 통장님은 지금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
한국의 행정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정은 희미하다.
반면 필리핀의 바랑가이는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정이 깊고 사람 냄새가 난다.
행정력보다 '관계력'이 더 중요한 곳,
바로 이곳이 필리핀 바랑가이의 진짜 모습이다.
📘 제5화: SK 청년회장 인터뷰 – “우리는 내일의 캡틴입니다”
“Sir, I’m Janna. I’m the SK Chairwoman here.”
작고 마른 체구의 스무 살 소녀, 잔나.
하지만 말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녀는 이 바랑가이의 청년 리더였다.
SK(사망가 카바타안, Sangguniang Kabataan)는 필리핀 바랑가이의 청년 자치 조직이다.
18세~24세 사이의 청년 중 선거로 선출되며, 청년 예산을 가지고 행사를 기획하고, 청소년의 목소리를 행정에 반영한다.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하지만 SK는 우리가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첫 번째 자리예요.”
“우리는 농구대회도 열고, 청년 직업 워크숍도 해요. 아이들한테는 책을 나눠줬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SK 이후엔 뭐 하고 싶어요?”
“캡틴이요. 아니면 시의원!”
순수하고도 분명한 눈빛이었다.
한국에선 청년이 정치 얘기하면 어른들이 웃는다.
하지만 이곳에선 진짜다. 바랑가이는, 누군가의 '첫 정치'다.
📘 제6화: 선거철, 바랑가이의 풍경
“캡틴 선거는요, 가족끼리도 싸워요.”
익명을 요청한 주민은 웃으며 말했다.
바랑가이 선거는 마을 전체를 흔드는 큰 사건이다.
돈이 오가기도 하고, 진심이 오가기도 한다.
‘정’으로 얽힌 사회는, 선거철이 되면 ‘갈등’으로도 얽히기 마련이다.
“어느 집은 자기 가족만 전부 카구와드로 출마했어요.”
“선거 전에는 갑자기 쌀이 나눠지고, 밥차도 돌아다녀요.”
그 말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이 지역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패? 선심성 정책? 한국 기자들은 그렇게만 말하겠지만,
나는 느꼈다. 이건 **‘공감정치’**다.
후보가 주민을 알고, 주민도 후보를 아는 정치.
그들에겐 정책보다 ‘평소 관계’가 더 중요한 기준이다.
웃으며 나눠먹던 리치맛 아이스크림 하나에, 표가 움직일 수도 있는 곳.
📘 제7화: 바랑가이 탄오드의 밤 – 마을을 지키는 자들
밤 10시, 나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바랑가이 탄오드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자원봉사 치안요원이다. 총도 없고, 월급도 거의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 진지했다.
“사건이 터지면 우리 먼저 가요. 경찰은 너무 멀어요.”
“우리도 위험하죠. 하지만 이건 우리 동네니까요.”
한 명은 후레쉬를 들고, 한 명은 낡은 무전기를 잡고 있었고,
그들은 진짜로 이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밤이면 마을의 소리들이 바뀐다. 개 짖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 멀리서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
그 속에서 조용히 순찰을 도는 이들.
나는 그들 안에서 ‘공무원’도 ‘경찰’도 아닌, 진짜 ‘이웃’을 봤다.
📘 제8화: 다시 만난 캡틴 조엘 – 그의 마지막 인사
여행 마지막 날, 나는 바랑가이 홀을 다시 찾았다.
캡틴 조엘은 여전히 바빴다. 하지만 나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벌써 가요? 이제 막 익숙해졌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캡틴님, 앞으로 몇 년 더 하실 계획이세요?”
“이번이 마지막일 거예요. 다음엔 청년들한테 맡겨야죠.”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난 이 동네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여긴 내 뿌리예요. 필요하다면 언제든 도울 겁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가 앉았던 의자와 바랑가이 홀 간판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나는 권력을 본 것이 아니라, 신뢰를 본 것이다.
📌 말.... – ‘바랑가이 캡틴’을 다시 정의
그는 시장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며, 국회의원도 아니다.
하지만 주민에게 그는 해결사이며, 보호자이고, 지도자다.
필리핀의 바랑가이 캡틴은 행정이기 전에 **‘관계의 리더십’**이다.
한국에는 없는 이 구조, 그러나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무언가일 수도 있다.
📘 제9화: 《마닐라 빈민가 바랑가이, 캡틴은 거기서도 리더인가?》
마닐라 톤도(Tondo), 좁고 진흙 섞인 골목길, 옷이 말라가고 있고 아이들은 맨발이다.
이곳에도 바랑가이 홀이 있다. 철제로 만든 작은 사무실, 그 옆에는 무료급식소가 조용히 운영 중이다.
캡틴 마르셀로를 만났다.
그는 몸집이 크고, 눈은 깊고, 말은 짧았다.
“여기선 행정이 아니라 ‘위기 관리’예요.”
“폭력, 실직, 마약, 물 문제…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죠.”
그의 사무실엔 벽걸이 지도로 바랑가이 내부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각 구역엔 ‘팀 리더’가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엔 탄오드와 자원봉사자가 있다.
철저하다. 마치 비상상황 본부 같다.
“이곳에선 법보다 빠른 게 인간관계예요.”
“누구와 밥을 먹고, 누구와 싸웠는지… 그것이 곧 행정의 기본입니다.”
이곳에서 캡틴은 경찰이자 가족이며 때로는 ‘최후의 희망’이었다.
빈곤은 시스템의 공백을 만들고, 그 공백을 캡틴이 몸으로 메우고 있었다.
📘 제10화: 《‘돈 없는 정치’는 가능한가? – SK 선거의 뒷이야기》
SK 선거, 겉으론 소박하다.
선거 유세는 마이크 하나, 간이 포스터 몇 장.
하지만 보이지 않는 ‘관계’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돈은 없지만, 밥은 있어요.”
“후보자 집에서 간식을 준다든가, 조용히 전기세를 도와준다든가…”
선거 전, 후보자 부모의 움직임도 분주해진다.
학교 선생님, 교회, 동네 가게, 농구장… ‘관계 만들기’는 조용히 일어난다.
나는 잔나(SK 회장)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도 선거 전 누군가에게 뭔가를 줬나요?”
“아니요. 대신 저는 매일 골목 청소를 했어요. 보여줘야 했죠.”
그녀의 대답은 솔직했고, 씁쓸했고, 또 아름다웠다.
돈보다 깊은 것은 ‘지속적인 관계’였다.
SK 선거는 단순한 청년 행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정치의 본질’**이 녹아 있다.
관계, 신뢰, 그리고 사람 냄새.
📘 제11화: 《‘돈 없는 정치’는 가능한가? – SK 선거의 뒷이야기②》
나는 선거 후, 잔나의 낙선한 경쟁자를 만났다.
그는 조용한 청년이었고, 영어보단 타갈로그를 선호했다.
“내가 졌지만, 후회는 없어요. 내가 한 일은 진심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잔나를 더 오래 봤어요. 익숙함이 이겼죠.”
그는 선거를 위해 만든 플랜카드를 아직 벽에 붙이지 않았다.
“그거 뜯기 아까워서요. 내 이름 처음 써봤거든요.”
가난한 마을의 선거는, 눈에 띄지 않는 슬픔을 남긴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의 희망’도 있다.
돈이 아닌 이름으로 시작해보려는 사람들.
그리고 실패했지만 계속 마을을 돕겠다는 청년.
“SK 끝나면요? 다음엔 바랑가이 카구와드에 도전할 거예요.”
“지금은 졌지만, 언젠가는 이길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작지만 흔들림 없었다.
그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였다.
📘 제12화: 《바랑가이 청년들, 그들의 꿈과 현실》
밤 9시, 농구 코트엔 아직도 청년들이 뛰고 있었다.
SK 청년 리더들이 주최한 바랑가이 청년 리그, 상품은 식용유 한 병과 컵라면 한 박스.
그러나 웃음은 진지했다.
“우리는 직업도 없고, 대학도 못 갔지만, 리그는 열 수 있어요.”
“이 마을엔 우리가 있어요.”
필리핀 바랑가이의 청년들은 많은 걸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하나는 있다 — 서로에 대한 책임감.
그들은 혼자 꿈꾸지 않는다.
함께 일하고, 함께 배고프고, 함께 웃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SK와 바랑가이는 작은 무대이자 연습장이다.
나는 묻는다.
“당신들의 미래는 어디 있나요?”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요. 이 마을 안에 있어요. 떠날 수 없으니까, 바꾸는 수밖에요.”
🛠 마무리......
“정치가 먼 이야기 같았던 사람들에게, 바랑가이는 가장 가까운 사회였다.
필리핀의 청년들은 돈보다 희망을 이야기했고, 리더는 명예보다 공동체를 먼저 떠올렸다.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의 본질이, 그 작고 덥고 시끄러운 바랑가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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